나는 바닥에 탐닉한다

어렸을 때 바닥만 보고 걷지 말고
앞을 보고 걸으라고 어머니께 자주 꾸중을 들었었다.
지금도 습관처럼 보도블럭 색깔에 맞춰 걸으려고 총총 걸음 걸을 때도 있다.
빨간 블럭만 밟고 가려고 다리 뻗어서 흰 블럭을 뛰어넘는 건
다들 한번쯤은 해 본 경험 아닐까? ^^
나도 나름대로 바닥에 조예가 깊다고 생각하였으나
바닥에서 미학적 사회적 의미를 찾아내는 글들을 읽으면서
이제 바닥 탐구는 그만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후후~ ^^
동경의 길바닥
정말 감동받았던 것은 동경의 보도블럭과 맨홀뚜껑이었다.
주택 살 적에 아버지를 도와서 보도블럭을 깐 적이 있는데
블럭 하나가 안 들어가는 모서리에 맞춰 블럭을 쪼개는 일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쯤 보도블럭 하나에도 장인정인이 느껴지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눈에 띄는 랜드마크나 기념비를 지으면서 수준 높은 디자인을 성취하는 일은 의외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이상의 자본이 투자되어 세워지는 건물들에는 평균 이상의 품질이 어렵지 않게 확보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상적인 삶이 담기는 평범한 장소들의 디자인 수준을 높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디자인에 대한 가치가 밑바닥부터 공감되어야 하고, 사소한 곳에도 적지 않은 자본이 투자될 수 있을 정도의 경제 규모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p.142)

나는 바닥에 탐닉한다
천경환 지음 | 갤리온 | 2007

워낭소리

다큐멘터리에 그 흔한 나레이션도 없는 영화였지만,
상영시간 내내 즐겁고, 때로는 가슴 찡하고, 눈물도 펑펑 흐르게 했던 영화였다.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먹먹한 눈을 껌뻑이면서
사람의 몸짓이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워낭소리

워낭소리
씨너스 G(강남역) | 서울 서초구 | 2009-02-14

어복쟁반 – 대동문

첫번째 맛집 탐방 시간..!
추운 겨울에 제격인 음식을 찾다가 어복쟁반이란 걸 보고 ‘이거다’ 싶어서 찜해뒀었다. ^^
난 첨 들어보는 음식이어서 짠~ 하고 알려주려 그랬는데 정현인 이미 알고 있었다. 털썩~
나도 이제 미식가가 될테닷~! 후훗~ ^^
차갑게 휘몰아치는 겨울바람을 뚫고
여의도의 빌딩숲 사이를 지나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내부가 생각 외로 단촐하고 정감있었다.
난 이런 동네 식당 같은 분위기가 좋더라. ^^
어복쟁반
어복쟁반은 듣던대로 맛이 담백하고 깔끔했다.
첫인상은 맑은 육수의 소고기 샤브샤브 같다는 느낌이었고, 육수가 좀 싱거웠다.
그런데 야채를 하나씩 먹고 아래 깔려있는 고기도 같이 싸서 먹다보니까
육수의 참맛이 느껴졌다.
첨엔 좀 싱거운 듯 느껴지지만, 입안에 감칠맛을 돌게 하는 끝맛이 있었다.
우리 둘 다 담백한 음식을 좋아해서 또 찾게 될 것 같다.
고기와 야채를 다 먹고 밥을 볶아서 먹었는데
볶은 밥은 어복쟁반에 비해 너무 자극적이어서 조금 아쉬웠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후식으로 볶음밥보다는 만두나 녹두전이 더 좋을 것 같다.
다음엔 만두랑 녹두전 먹으러 가보자..! ^^
어복쟁반 | 대동문 (구 삼미옥) | 서울 여의도

인생만화

오랜만에 쓰는 독후감이다.
사실 독후감을 포함해서 블로그에 글을 적는 것이
재미있을 때도 있고, 좀 구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걸 내가 왜 굳이 적고 있을까 하는..)
다른 바쁜 일에 밀려서 생각만 하고 그냥 지나칠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가끔 지난 글들을 보면 기분이 좋고, 이렇게라도 적어두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인생만화’를 보면서
좀 더 시간을 내어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인데,
그 그림과 감칠맛 나는 글을 보고 있으면
내 삶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리 바빠도
가끔은 자전거 타고 양재천을 달리는 여유 정도는 가져야겠다.
인생만화
책을 덮고나니 눈에 들어오는 표지의 한자 제목.
人生漫畵가 아니라 人生萬花였다.

나는 출근길에 여기저기 눈이 머무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
골목에서나 지하철에서.
그림을 그리면 대상과 대화하게 되고 친해지고
사물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어, 결국은 사랑하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대상을 사랑하는 일이다.
무엇이든 천천히 그리면 다 그림이 되어 어떤 때는 내가
마이다스의 손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사실은 사물 자체가 원래 황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사실 습관이어서
그리지 않고 있으면 언제 황금이었냐 싶게
그냥 사물로 돌아가버린다.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아침에 골목을 나서면 이런저런 것들이 그려달라고
발목을 잡는다.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 행복한 천형 (p.129)

인생만화
박재동 글, 그림 | 열림원 | 2008

서른살

한해가 가고,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서 별 느낌 없이 살아왔었는데,
‘서른살’이란 나이는 마치 나에게 묵직한 짐을 지워주는 것 같다.
이젠 내 이름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인 것도 같고.
뭔가 서른살 이전과는 달라져야 할 것만 같다.
소녀시대도 좋아하면 안 될 것 같고,
작은 가방도 메면 안 될 것 같고,
쁘띠첼도 좀 줄여야 하나… ㅎㅎ
요즘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문득 사람의 크기/도량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서른 다섯살 그리고 마흔살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내 일을 당당하게 해나가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