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사진 슬라이드쇼

동영상은 작년 여름에 만들었는데 유투브에 업로드하는데 문제가 있어서 이제서야 등록했다. PC에서 재생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파일이었는데 유투브에 업로드하면 첫부분의 색이 항상 역상되어서 보기 싫게 되었다. 결국 mp4 파일을 avi로 변환해서 해결했다. 결과적으로 인코딩을 세 번 거치게 되어서 맘이 좀 쓰리지만 다행히 화질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Aperture 3의 Slideshow 기능을 사용해서 만들었고, 선택한 Theme는 Scrapbook이었다.

이렇게 동영상으로 다시 보니까 그 때의 느낌과 생각이 며칠전 일처럼 떠오른다. 호주는 다시 한 번 꼭 가고 싶은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 과거의 역사와 현대 문명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호주를 간다면 호바트(Hobart)에 가고 싶다. 지금보단 한참 나이가 들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 봐야 할 때 가고 싶다..

인간 손석희

아침 알람으로 늘 손석희 교수의 시선집중이 라디오에서 크게 들린다.

어 아직 잠이 깨지않았는데 손석희 교수의 목소리가 아닌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다.

한파로 차가 말썽을 부렸다고 한다.^^

출근해서 보니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의 1위로 나오길래 클릭해봤더니

예전에 언뜻 봤던 글이 눈에 띈다~

인생은 쉽게 가는게 물론 좋지만

그래도 멋있는건 이런 대기만성형이 멋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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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By 손석희